우리나라 지리학자의 등장--석천 이찬(石泉 李燦)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일본 교토의 료코쿠 대학에 소장된 사실을 파악한 서울대학교 지리학교수 이찬 박사는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하려 시도했으나 사진 촬영조차도 일체 허가하지 않는 일본의 온갖 방해 공작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찬 교수는 굴하지 않고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일본의 인맥을 통해
마침내 1968년 「혼일강리도」의 사진을 입수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국내의 유명한 초상화 전문가와 서예가의 도움으로 지도의 모사와 표기 작업을 완성하여
결국 15년이라는 긴 세월속에서 지난 1983년
류코쿠대학의 소장본과 같은 필사본 지도가 완성되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하게 된것이다.
우리의 정신 우리의 것인「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우리의 땅에 놓아두려 했던
이찬 교수의 15년이라는 혼신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온 세계가 경탄한 아시아와 이슬람권과 유럽 그리고 오지의 아프리카를 품은
세계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지도를 만들었던 지혜로운 선조의 정신은 일본 땅에서 어둠의 침묵을 삼키며 있었을 것이다.
서울대 규장각 초대 관장을 역임했던 국사학과 정옥자 교수는
“저의 삶에서 가장 많은 정신을 일깨워 주신 분이십니다.
박사님을 통하여 선비정신에 담긴 높은 인품과 배려에 힘입어
나라의 정신을 알리는 많은 기획을 펼쳐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이찬 교수의 소중한 민족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정신을 기렸다.
이찬李燦
(1923.1.14.~2003.1.11)
號는 석천(石泉)이며 본관은 덕수(德水). 출신지는 황해도 연백(延白)이다.
평양사범학교를 나와 1948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1951년 서울대학교 지리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에서 ‘쌀의 문화사’로 박사학위를 받아 우리나라 지리학 박사 1호가 되었다.
이후 1988년까지 28년동안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의 고(古) 지도 수집과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권위자이다.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회장, 대한지리학회 회장, 국제지리학회(ICU) 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활발한 학회 활동으로 1988년 지리학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고,
1989년 학술원 회원에 선출되었다.
1991년 ‘혼일강리역대국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등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고지도들을 수록한 저서『한국의 고지도』를 남겼으며,
이 밖에도 『서울의 옛지도』‧『인문지리학의 원리』‧『발전론서설』‧『한국의 기후』 등의 중요한 저서를 남겼다.
특히 『한국의 고지도』는 1992년 문화부 추천도서에 선정되었으며,
1999년에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세종성왕상(世宗聖王賞)을 수여받았다.
2001년에는 평생 수집해온 한국 고지도 160여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한 그는,
한국의 지리학계에서는 한국지리학의 개척자이자 한국 고지도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하고 있다.
▲이찬 교수
글 : 晩悟 泰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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